한국고전영화

<자유만세>

채인여강 2016. 2. 26. 14:27

한국영화 순례6.<자유만세>
감독 : 최인규
각본 : 전창근, 최인규
출연 : 전창근, 유계선, 황려희, 김승호, 복혜숙, 한은진, 하연남, 윤봉춘
1946년 10월 21일 개봉...
해방이후 독립운동을 다룬 첫 한국영화라 할 수 있는 작품
<수업료>, <집 없는 천사>를 연출한 최인규 감독의 작품이다. 해방을 바로 앞둔 시점에서, 일제에 항거하다 장렬히 최후를 맞는 독립운동가의 모습을 그린 영화. 최인규 감독은 1940년대 일제 말기 다수의 군국주의 영화를 제작한 것에 대한 속죄로 <자유만세>, <독립전야>(1948), <죄없는 죄인>(1948) 3부작을 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독립운동가 최한중(전창근)이 동료와 함께 감옥을 탈출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탈출에 성공한 최한중은 병원 간호부로 일하고 있는 혜자(황려희)의 집에서 지내면서 독립운동 지하조직을 지도하고 일본의 폐망 전에 무장봉기를 일으킬 계획을 한다. 그러나 거사 직전 다이나마이트를 운반하던 조직원 박(김승호, 영화 <마부>로 유명해진 바로 그 배우다. 이 영화가 데뷔작)이 일본 헌병에게 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최한중은 박을 구출하고 추격을 피해 미향(유계선)의 집으로 숨어든다. 일본 헌병의 애인이었던 기생 미향은 최한중을 연모하게 되고 거사 자금과 함께 일본군의 동향을 전하고자 최한중의 은신처를 찾아간다. 그러나 미향을 일본군 밀정이 미행하게 되고 헌병대가 은신처로 들이닥친다. 최한중은 헌병대에게 미향이 밀고한 것으로 알고 분노한다. 그러나 헌병대에 맞서 저항하는 자신을 미향이 도우려 하자 오해를 푼다. 헌병대의 총탄에 맞아 미향은 죽고 최한중은 부상을 입어 혜자가 있는 병원으로 후송된다. 혜자를 찾은 최한중의 동료 조직원은 최한중의 탈출을 도와줄 것을 부탁하고 혜자는 마취제로 감시병을 잠들게 한 후 최한중을 탈출 시킨다.

현재 복원된 영화는 50분 분량으로 최한중의 병원 탈출 장면에서 끝나는데 원래 런닝타임은 100분이었다고 한다. 시나리오 상 일본 헌병대의 추격을 피해 산 속까지 달아난 최한중은 헌병대의 총탄에 맞아 8월 15일 동틀녁에 죽는 것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 영화는 1946년 4월에 기획되어 8월 광복절에 맞춰 개봉키로했으나 늦어져 10월에 개봉했다고 한다. 1946년 개봉 당시 북에는 소련군이 남에는 미군이 진주한 상황에서 신탁통치 반대 여론과 자주적 독립국가 수립에 대한 열망으로 온 나라가 들끓었던 시기였다. 이러한 때에 <자유만세>는 국민적 염원을 반영한 것이었다. 어차피 일본은 패망하게 되어 있으니(이미 1945년 8월에 소련군이 북쪽에 진주) 때를 기다리자는 인사들에게 최한중이 우리 민족만의 독자적인 무장투쟁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장면은 해방을 맞았지만 자주적 독립국가 수립이 좌절되고 소련과 미국에 의해 나라의 운명이 좌우되는 현실에 대한 반영이었을 것이다. 독립군에 관한 이야기라서 많은 관심을 받았고 당시에 보기 드문 인테리 여배우 황려희(경기여고 출신)의 출연은 세간의 화제였다고 한다.
각본과 주연을 맡아 우수어린 표정으로 강직한 독립투사를 연기한 전창근은 감독으로도 활동하였고, 기생 미향을 연기한 유계선(실제 평양 기생출신이라고 한다)의 남편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통해 데뷔한 황려희(이혜자 역)는 이후에 두 차례 더 영화를 하게 되는데(<삼천만의 꽃다발> (1951), <죄없는 죄인> (1948) ) 재미있는 것은 함께 출연한 세 작품 모두 복혜숙의 딸로 나온다는 것이다.

-덧붙여서…

* 이 영화를 보는 매력 중 하나는 해방 직후 서울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정릉계곡, 서울대학병원, 혜화동과 돈암동, 그리고 아현동 등 6.25전쟁으로 폐허가 되기 전 서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보는 가치는 충분할 것으로 생각한다.

** 현재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서비스되는 이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와 편집이 해방 전 최인규의 영화와 비교할 때 실망스러운 수준이라 생각되지만 물자의 부족과 혼란스러웠던 사회적 상황에서 영화가 제작되었다는 점,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이 영화는 6.25전쟁으로 필름 일부가 유실되고, 자진 월북한 배우(독은기, 미향의 애인인 일본헌병대 간부 역)가 연기한 부분을 개봉 이후 삭제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 해방 후 첫 영화로 기록되는 <자유만세>는 중국에서도 개봉하였는데, 장개석이 이 영화를 보고 친필로 <자유만세, 한국만세>라는 휘호를 썼다고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