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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단적 사유와 미숙한 기록/혼자 걷기

목련이 싫어졌습니다 - 2006. 04. 10.

목련이 싫어졌습니다

 

제가 일하는 사무실 뒤편엔 목련 한 그루가 있습니다.

겨울부터, 가지마다 달린 봉우리들이 제 눈길을 끌었지요.

일을 하다가 잠깐 바람을 쏘이고 싶을 때, 담배 생각이 날 때마다

창가로 가 앙상한 가지에 사마귀처럼 돋아난 봉우리를 바라보곤 했습니다.

얼마전 그 봉우리들이 따뜻한 봄기운이 받고 가지마다 꽃을 피웠습니다.

활짝 만개한 목련꽃이 무척 탐스럽더군요.

아직 그 옆에 있는 모과나무는 어린아이 손가락 만한

새순을 틔었을 뿐인데 목련은 제법 성숙한 여인네처럼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또 이런 말을 하면 "저놈 또

딴지를 거는군"하시겠지만 말입니다.

다른 꽃보다 훨씬 먼저 피어 대견스러웠는데,

어제, 오늘 가지마다 부러질 듯 활짝 핀 목련을 보면서

시골 여인숙의 불결한 이부자리가 떠올랐더랬습니다.

갑자기 커다란 목련의 아이보리 색 꽃잎들이 천박해 보이고 싫어지더군요.

무슨 이유일까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딱히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군요.

마음이 황폐해져서일까요.

세상 만물이 봄바람에 가볍게 떠오르는데

유독 저만 가라앉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어김없이 봄날은 저만치 가고 있습니다. 또 저만 빗겨서 말입니다.

 

2006.04.10. 21:02